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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란 무엇인가?카테고리 없음 2021. 3. 12. 22:07
시란 잘 통제되고 절제된 언어 예술로 모든 문화의 정수(精粹)이다.
자고로 시란 고독을 밑천으로 삼은 사람들이 짓는다고 한다.
시는 슬픔의 정화(精華)이고 결정체이다.
두보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슬픔을 시로 나타냈다.」고 평가된다.
시는 돛단배로 은하수를 건너고, 직녀가 비단을 짜며, 선녀가 우물에서 전설을 길어 올리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짓는다고 한다.
시는 「실존의 사치」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바이런은 「시란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범람」이라고 정의했다.
플라톤은 「시는 교묘한 수사를 통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폄훼했다.
공자는 「시는 감흥을 자아내는 것 詩可以興」이라고 했다.
영국시인 새뮤얼 존슨은 「시란 본질의 발견이다.」 라고 말했다.
「시의 언어가 형상이요 껍질이라면 의미는 빛깔이요 속살이요 맛이다.」라는 사람도 있다.
흔히 동양의 시는 「소리 없는 그림 無聲畵」 그림은 「소리 없는 시 無聲詩」라고 불렸다.
오직 시적사유를 통해서만 「하늘 밖의 하늘」을 볼 수 있고. 식물과 교감할 수 있다. 시의 가장 뛰어난 힘.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는데 시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한다.
포프(Pope)는 시를 철학적인 진실을 말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했다.
좋은 시일수록 말은 다 해도 울림은 오래 가고. 잘된 시일수록 언어의 한계를 넘어 정경만으로도 시적 정취에 빠지게 한다.
시의 첫 구에 경치를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기법을 흥(興)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시는 전반부에 경치를 묘사하고. 후반부에 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중국 명나라 시인 고계는 시 짓는 것을 쌀로 단사(丹砂)를 만드는 일로 비유하여 신비한 영능으로 여겼고 그것은 천상의 존재가 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천상의 존재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고 하였다. 그가 요형(腰刑)을 당한 이유일까?
하늘에는 딱 하나 없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니 특출한 시인이다. 그래서 이하는 하늘에 있는 백옥루의 상량문을 쓰기 위하여 27세의 젊은 나이에 급히 하늘나라로 불러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최고의 시는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지은 앞을 보지 못하는 호머 같은 시인으로부터만 태어난다.
시무달고(詩無達詁)라고 시는 독자의 상상과 연상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즉 시는 누구나 인정하는 정확한 해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줄서는 것이 아니다.
시는 형식미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언외지의(言外之意) 글 밖의 것을 알아챌 때 더 큰 함축미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이는 문화재를 사랑하는 어느 고적한 사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문화재에서는 완결미를 느끼고 반쯤 남아있는 문화재에서는 없어진 나머지 반쪽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낀다.」와 같은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시가 그렇지만 특히 한시(漢詩)는 말없음으로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는 효과인 함축적인 표현으로 행간을 통해서도 말을 하는 함축미의 창조에 시의 성패가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화가 잭슨 폴락은 자신의 그림에 「1번」등으로 작품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규정하거나 한정하지 않고 그저 번호만 붙임으로서 작품의 해석을 보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예로 한 작품에서 누구는 자유를, 누구는 인연의 실타래를, 또 누구는 정렬이나 혼란. 번민 등을 느끼는 것이다. 시도 이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시는 관념의 덩어리를 근사한 어휘로 포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시는 시인의 깊은 내면을 솔직히 드러낸다. 그러할 때 비로소 시인의 깊은 내면의 정서는 개인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독자들에게 공감이 된다.」고 하며 그 대표적인 것으로 두보의 동곡칠가와 성도기행을 든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것을 벗어난 보편성의 획득에서 시인의 우열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백거이는 「진실한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참된 시이고. 그것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고 하였다.
청나라 원매와 조선의 이옥은 「시란 진솔한 감정의 표현으로 그 감정은 남녀간의 정만큼 감동을 주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性靈說
「시가 가진 가장 큰 역할과 본질은 시인의 정서와 회포를 드러내는 서정기능이다. 만남과 이별 등에 따른 희노애락의 정서가 예술적인 언어로 표현될 때 다시 독자의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는 시론도 있다.
일찍이 시의 가치와 효용을 알아본 사람은 뜻밖에도 공자였다.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不學詩 無以言」라고 할만치 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를 통해 두터운 심지와 온유한 품성을 배양할 수 있다고 했고. 사유와 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시가 사유를 만들고 사유가 시로 표현된다고 하였다.
「시를 창작할 때는 독만권서(讀萬卷書)의 지식 축적이 먼저 필요하고, 다시 행만리(行萬里)의 노고가 뒤따라서 식견과 경륜을 쌓을 필요가 있다. 또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역시 학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인 통찰력이 필요하다. 즉, 시인의 눈의 크기를 읽으려면 독자의 눈도 상응한 크기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백번 들어도 지당한 말씀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론(詩論)에서 「일찍 씨를 쓰면 별로 이루지 못한다. 시인은 벌이 꿀을 모으듯 하고 끝에 가서 열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무릇 시중의 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이 있는 것처럼’ 삶 자체가 시(詩)인 사람이고, 인생이 곧 시인(詩人)인 사람이다!
2021,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