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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戀情)보다 더 그리운 우정(友情)카테고리 없음 2021. 4. 25. 21:59
사람에게 사랑보다 더 한 것이 있을까? 로미오와 쥬리엣은 사랑으로 인해 죽고. 탕현조의 희극 「모란정」의 여주인공 두여랑은 사랑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정이나 애정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언어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적사유(詩的思惟)나 비유를 이용하는데, 변용로의 시 「논개」의 첫 구절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은 역사서 사기(史記)를 저술했는데, 중국인들은 세익스피어가 그러하듯 사마천과 만리장성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사마천을 택한다고 한다. 사기는 본기(本紀)도 있지만 열전(列傳)이 중심이고 열전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자객열전을 읽으면 누구나 저절로 고양된다.
왜, 자객 예양이나 섭정, 형가의 기록을 대하면 가슴이 떨리는 걸까? 거기에는 애정과는 다른 우정이라는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본능을 좇는 것이지만 우정은 가치(신의 등)를 좇는 것이고. 사랑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지만 우정은 새로운 나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기투합(意氣投合)이란 말이 있는데, 생각이나 뜻이나 지향이 같다는 것으로 사람이 의기투합이 되면 우정이 생기고 쌓여서 사랑보다 앞서게 되고 목숨보다 중하게 된다. 애정이나 우정이나 똑같이 가슴에서 나오지만 우정은 사랑보다 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뜻이 간파당하고 내 마음이 도둑맞고 내 생각이 읽혀지는데, 애정은 식기도 하고 애정은 끊어지기도 하지만, 우정에서 나오는 호기(浩氣)나 의기(意氣)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을 위해 죽는 경우는 드물지만 우정을 위해서는 기꺼이 죽는 배경인 것이다.
의기투합은 알아줌과 아낌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선비나 용사(勇士)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내 뜻을 펴지만 그렇지 않으면 뜻을 접고, 내가 먼저 나아감은 아부나 아첨이지만 상대방이 나를 찾는 것은 공경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다.
왜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을까? 그것은 한 사람의 존재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일깨워줬기 때문에 우정은 사랑보다 강하고 사랑보다 무겁고 사랑보다 클 수밖에 없다. 이성을 향한 그리움보다 더 그립고 사무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 화랑 사다함은 무관랑과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맹세했는데, 무관랑이 죽자 7일 동안 통곡하다 따라 죽으니 나이 17세였다.
클레오파트라와 시저, 안토니우스로부터 봤지만 사랑의 포로는 시한이 있지만 마사다요새에서 960명이 자결한 것처럼 우정의 포로는 시한이 없다. 사랑이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다면 우정은 생명을 초월하고. 사랑은 내 삶의 존재이유로는 부족하지만 우정은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고 내 삶의 존재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우정에 대해서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세기의 우정」이라는 다윗과 요나단.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우정에는 운명처럼 처연함이나 비장함이 따라다니는데, 그럴수록 우리는 고개를 돌려 이들의 우정을 더 뚫어지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사무엘하 1장을 보면, 요나단은 어렸을 적부터 다윗왕과 절친한 사이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할 때 살려주는 등 다윗왕의 수호자 역할을 하였다. 뒷날 요나단이 블레셋족과의 싸움에서 사울왕과 함께 전사하자 다윗왕은 비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슬프도록 조사를 낭독한다.
「나를 향한 그대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컸고. 나에 대한 그대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어느 여인의 사랑도 뒤따를 수 없었는데, 아, 용사들은 쓰러지고 무기는 사라졌도다.」
-「트로이」라는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다. 뒷날 둘 다 트로이전쟁에 참가했는데,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전리품으로 준 여인 브리세이스를 도로 빼앗아가자 화가 나서 참전을 거부한다.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군대는 싸우는 쪽쪽 패하는데 이에 파트로클로스를 비롯한 그리스군의 장병들은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얘 쓰고, 보다 못한 아킬레우스는 자기만 입는 -어떠한 칼과 창도 뚫지 못하는 갑옷을 파토로클로스에게 주어 파트로클로스는 싸우는 쪽쪽 이기자 추격하지 말라는 아킬레우스의 말을 잊고서 트로이군을 추격하다가 트로이의 제 1왕자 헥토로의 창에 찔려 전사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목 놓아 통곡하고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도 깊은 바다 속에서 같이 울었다고 한다.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끼어들면 죽는다는 신탁이 있었음에도 다시 싸움판에 뛰어들어 헥토르를 죽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지만 얄궂게도 트로이의 공주 헥토르의 동생 폴릭세네를 사랑하게 되어 삼손처럼 자기의 약점을 누설하고 아킬레우스건이라는 것을 알아챈 헥토르의 동생 파리스왕자가 쏜 화살을 맞고 절명한다.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는 그 열 번째 날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티투스와 지시포 두 청년간의 관계- 사랑을 양보하고, 살인죄를 자청하며, 재산을 공유하는 등-를 통해 우정을 거룩한 단계까지 올려놓았다.
2021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