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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밤새에 백발(白髮)이 된 사람들카테고리 없음 2021. 5. 1. 16:00
머리가 희게 된 것을 한탄한 시나 글은 많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고 쓴 이백의 시 추포가(秋浦歌)나 「어찌 금석(金石)도 아니면서 초목과 영화를 다투려는가? 」라는 구절이 있는 구양수의 글 추성부(秋聲賦)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노쇠의 표시든 연륜의 표시든 간에.
그런데 역사상의 기록들을 보면 하룻밤사이에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의학자들은 바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낭(毛囊)에 있는 멜라닌 줄기세포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극도의 공포나 충격)줄기세포들이 모낭을 떠나는데, 흰머리가 생기는 것은 멜라닌 줄기세포의 고갈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체는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요인에 의해서도 반응을 보이는데, 6·25사변 때 지리산 빨치산에 참여한 여성들의 생리가 끊어졌다는 것이나 2차 세계대전 때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서 다음날 처형당한다는 얘기를 들은 한 유대인의 머리카락이 밤새 희게 변하였다는 것 등에서 약간의 과장은 있겠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몸도 알아서 따른다는 것이다 .
-이하 역사상의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희게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중국 춘추시대 때 초나라의 오자서란 사람은 간신에게 모함을 당해 아버지와 형은 죽임을 당하고 혼자만 간신히 초나라를 도망치는데 숨겨준 나뭇꾼이 밀고할까봐 극심한 두려움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 보니 눈썹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말에는 오자서가 국경관문인 소관(昭關)을 지날 때 잡힐 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을 얼마나 했던지 하루밤새에 수염과 머리카락이 희어졌고 관문을 지키는 병사가 모르고 통과시켜 주었다고 한다.
반악은 중국 서진의 문장가이고 미남으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나이 서른 살에 부인 양씨가 병으로 죽었는데(298년),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얼마나 슬펐던지 밤사이에 머리칼이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는 또 중국의 도망시(悼亡詩),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의 원조로 꼽히는데,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이 그 시원이라고 볼 것이다. 그의 부인을 애도하는 시 몇 구절을 감상한다.
봄바람은 문틈으로 비껴 들어오고 春風緣隙來
지붕의 이슬은 방울져 처마로 흘러내리네. 晨霤承檐滴
자나 깨나 당신 생각 잊을 수 없고 寢息何時忘
슬픔은 날로 더욱 내 마음에 쌓여가네. 沈憂日盈積
원하노니 이 슬픔 잦아들 때면 庶機有時衰
질그릇 두드리며 노래 부른 장자(莊子)겠지. 莊缶猶可擊
천자문(千字文)을 지은 주흥사에 관한 이야기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흥사가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는데, 양나라 황제 소연의 하룻밤 사이에 태자가 배울 학문의 입문서를 지으면 살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주흥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룻밤 만에 천자문을 완성하였다. 이때 멀리서 새벽닭이 울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아찔함에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어느 하루 양무제가 글자가 하나씩 쓰여 있되 중복되지 않은 종이 천 개를 가져와 내일 해 뜨기 전까지 한 자도 중복 없는 운문의 글을 지으라 해서 주흥사는 하룻밤사이에 오늘날 우리가 쓰는 천자문을 지어 올렸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되고 집에 돌아와서는 두 눈마저 멀었다고 한다. 천자문을 머리가 희도록 지었다고 해서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고 한다.
유토피아를 지은 토머스 모어경(卿)은 헨리 8세가 아라곤의 공주인 케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그녀의 시녀인 앤 불린과 결혼하자 이에 반대했다는 죄목으로 런던탑에 갇히고 처형을 당하는데, 하룻밤사이에 머리가 희어졌다고 한다.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부인 무므 타즈를 몹시도 사랑하여 전장(戰場)에도 같이 다녔다. 어느 원정길에서 무므 타즈는 천막에서 진통을 느껴 해산을 하려는 중에 죽게 된다. 이때 왕비의 나이 서른아홉. 왕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 황제의 머리카락은 밤새 하애졌다고 한다.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건축물인 타지 마할은 그녀를 위해 지은 궁전식 무덤이고 나중 샤 쟈한은 아들에 의해서 타지 마할이 건너 보이는 아그라성에 유폐되는데, 이 때 흘린 눈물이 아그라성을 감싸고 도는 아무나강의 강물만큼이 된다고 시성 타고르는 말했다.
프랑스 혁명(1789)이 일어날 때 프랑스의 왕은 루이16세였고 왕비는 마리 앙트와네뜨였다. 두 사람 다 구체제의 심장으로 단두대에 서게 되는데, 처형 당하기 전날 왕비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극도의 공포감에 밤새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마리 앙트와네뜨는 14세에 왕과 결혼하여 38세에 생을 마친다(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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