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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능한 정부와 민의(民意)라는 이름의 탐욕
    카테고리 없음 2021. 5. 23. 17:56

    지난 4·7 보선에서 부동산과 세금 문제로 참패했다고 여기는 민주당은 재산세를 낮추고 종부세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곧 공시가격 6억 원까지 깎아주던 재산세를 9억 원으로 확대하고, 최근 주택가격의 가파른 상승과 이를 반영한 공시가격의 상승에 따른 1가구 1주택의 경우 재산세를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추미애 전 대표는 재산세 감면이 아니라 오히려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꾸준하게 올리는 정책으로 나가야 하며, 국민들이 재산세 감면을 바라는 것은 내 집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면서 세금은 적게 내겠다는 이중적인 심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극우야당과 수구언론이 준거국(準據國)으로 삼으며 자주 비교대상으로 삼는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주택을 보유하는데 따라 내는 세금은 미국인의 ¼에서 에 불과하고. 미국은 보유세가 주마다 다르나 보통 1,25에서 1,5이며 그것도 철저하게 실거래가를 적용한다고 한다. (한국의 보유세는 0,16정도) 예컨대 미국의 경우 4억 원의짜리 집의 재산세는 1850만원인데 반해 한국은 20-30만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비해 부동산 세금이 아주 낮은데도 높은 세금으로 인식하는 것은 세금 문제를 조세형평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극우 야당과 수구 언론들이 월세 내듯 세금 낸다.거나 세금폭탄등의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며 정치투쟁의 도구로 쓰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부동산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문제가 되었으며, 모든 국민이 목숨을 거는 문제가 되었다. 솔로몬의 묘책이 나올 수 없다고 보면 앞으로 부동산 때문에 정권을 뺏고 빼앗기는 것이 반복될 것이며, 부동산을 잘 다루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치수(治水)라 할 만큼 정권적인 문제가 되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근래의 코로나에 따른 유동성의 증가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현 문재인 정권의 무능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가격 메커니즘의 마지막은 심리인데 이 정권은 심리전에서 진 것이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그동안의 학습효과와 가수요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정권은 학습효과도 소용없었고 가수요도 잡지 못하였던 것이다..

     

    지금 이 정권은 다음 선거를 의식하여 정략적으로 재산세를 깎아주려 하고 있다.(부자감세) 부자들에게 영합하는 것이다. 지난 4·7보선은 불로소득을 지지하는 민심(民心)이었고, 서민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우리들만 잘 살겠다는 민의(民意)였다. 이기적인 민심, 탐욕스러운 민의와 민주당은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이 미치면 단순 미치광이가 되지만 집단적으로 미치면 사회의 주류가 되는 사회가 되었다. 개인이 하면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 집단으로 함으로써 통념이 되고 상식이 되는 도덕불감증의 사회가 되었다..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해야 하고. 불로소득은 명백하고 심각한 불의라고 불러야하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미켈란젤로는 1504년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는 모양의 높이 약 4m의 대리석상() 다비드상을 제작한다. 당시 피렌체공화국에서는 불의에 대한 분노는 모든 피렌체 시민의 덕목으로 여겨졌으며 다비드상은 이에 걸맞는 작품이었다.

     

    극우와 수구들이 싫어하는 헨리 조지는 부패한 정부는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수 없다.고 했는데, 무능한 정권도 똑같다 할 것이다.

     

    나라에 어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수만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는데, 모두가 견물생심(見物生心)하니 그 씨가 끊어질 수도 있음이 우려된다.

     

    중국 청나라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문인화가였던 정판교는 유현의 현령직을 떠날 때의 나이가 예순 한 살. 그가 떠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울었고. 그가 떠난 다음에는 많은 집에서 그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계속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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