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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視線)이 향하는 곳카테고리 없음 2023. 5. 28. 20:01
싯딸따는 카필라왕국의 왕자 시절, 태어나고 병 들며 늙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불교를 창시한다. 중국 삼국시대 문장으로 이름 높던 건안칠자(建安七子)중의 유정(劉楨)은 조비의 부인 견씨(甄氏)를 똑바로 쳐다봤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맞는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주인공 바흠은 땅만 바라보다가 겨우 2m 길이의 땅에 묻힌다. 이렇게 사람은 눈길을 어디에 주는가에 따라 인생이 갈리고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개 시선(視線)이 쌓이면 견식(見識)이 되며 견식이 모아지면 관점(觀點)이 된다. 또 시선은 관심도 되고 지향점이나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란 말은 속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는 말처럼 사람은 시선이 가는 곳에 몸과 마음도 반응한다. 시선이 서역정토에 가있으면 원왕생(願往生)을 그릴 것이고. 시선이 소요(逍遙)에 가있으면 그림지도 쉬어간다는 식영정(息影亭)을 찾을 것이다.
시선을 주는 곳이 다르면 생각도 달라지고 생활도 달라진다. 앞에서는 박장대소(拍掌大笑)해도 돌아서면 반목(反目)하고, 한 침상을 쓰나 다른 꿈을 꾸게 될 것이며, 마음 대신 펄럭이는 깃발만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저런 족속(族屬)이었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서 시선이 바뀌어졌다. 그전까지는 먹고 마시고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으나 독서는 내 눈을 새롭게 뜨게 했고, 내 눈길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가리켜주었다.
나는 고적(古蹟) 순례를 좋아한다. 온전하면 그 완결미에, 부분이면 그 애잔미(哀殘美)에 푹 빠진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또 다른 최순우가 되고, 꼭 흥륜사(興輪寺)아니어도 3층석탑이나 5층석탑을 돌 때는 신라사람 김현이 된다.
우리가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 나눈 적은 없지만 시선이 합쳐지고 한곳에 집중 할 수 있다면 비록 천고(千古)의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는 계산을 달리 하지 않는 것이 되어 기쁘게 도반(道伴)이라 할 수 있고 동학(同學)이라 할 수 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중의 한 사람인 한유는 가솔들이 대부분 죽고 젊은이들만 남았을 때 ‘옛일 같이 논할 사람 없구나! 舊事無人可共論.’라고 탄식을 했는데,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이 없을 때의 탄식도 이와 같다 할 것이다.
202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