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고 있는 ‘여인’카테고리 없음 2023. 7. 16. 15:10
토요일 어제는 아침 일찍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지인이 일러준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로 ‘거인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찌뿌둥하여 간간이 비를 뿌리고, 혼잡할 줄 알았는데 쉽게 표를 끊을 수 있었다.
근데 또 하나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 하여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으로 가야와 신라시대의 장송의례(葬送儀禮)로 사용된 상형토기와 토우의 전시였다. 나는 이것에 더 귀가 솔깃했다. 이건 ‘덤’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획자의 ‘센스’에 넘어간 것이다.
드디어 10시 개관하자 나는 사람들을 뒤쫓아 부리나케 서양그림들을 보았다. 처음 보는 고흐의 그림 〈풀 우거진 들판의 나비〉와 마네의 〈붓꽃〉도 있었지만, 익숙한 고갱의 〈창문 앞 과일그릇과 맥주잔〉과 마네의 〈카페 콩세리의 한구석〉과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이라는 〈렘브란트, 63세〉도 볼 수 있었다.
과연 모든 그림들이 서양미술사를 통해 알은 것처럼 걸작이고 명작이었다. 가히 ‘세계적’이라는 말에 합당하였다. 나는 내 짧은 그림 지식으로 고개만 끄떡거렸는데 어느새 나가는 문에 다다랐다. 이제는 문구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나의 눈길을 끄는 건너편 상설전시관에 갈 차례이다.
여긴 앞의 전시회와는 달리 사람이 별로 없다. 그것이 오히려 찬찬히 살펴보는 데는 더 좋다. 거룻배 모양이나 집 모양의 토기도 있고, 식기나 술잔 등의 토기도 보인다. 이것들은 망자(亡者)가 저승에서도 이승처럼 편안히 생활하라는 남은 사람들의 바림일 것이다. 사람들이 왜 죽음을 공론(公論)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시회는 마지막을 대작(大作)으로 마감하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었다. 완전히 나는 의표를 찔렸다. 마지막 전시는 막 나가려는 참의 거기에 있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자그마한 토우 하나가 유리상자 안에서 은은하게 불빛을 받고 있었다.
결국 지금까지 본 것은 이 토우를 보기 위한 복선이거나 준비 장치였다. 역시나 연출자의 단수가 썩 높다는 생각을 했다. 토우는 ‘울고 있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울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끔 돼 있다. 서양미술에는 울고 있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 몇 점 있다.
유명하기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으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내려다보며 슬프게 우는 성모 마리아 〈피에타〉가 있고, 로댕의 조각품으로 한 젊은 여인이 엎드려 우는데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다나이데스〉이며, 피카소가 사진작가 애인 도라 마르를 그린 〈울고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빗발치는 슬픔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여기 토우와는 다르다. 이 신라여인은 그 어깨의 선이나 가슴의 볼륨으로 보건대 잔잔한 물결 같이 울고 있고 세우(細雨) 내리듯 울고 있는 것이다. 곡선을 짓는 울음이고 하얀 색깔의 울음이다. 무위(無爲)한 것으로서 유위(有爲)한 것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겨우 3‚2cm에 불과한 가녀린 여인이 주검을 감싸 안은 채 울고 있다. 망자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 여인의 애절함을 뒤로 하고 가야만 했을까? 너무나도 짧은 수명을 빌렸기 때문일까. 망자가 누구기에 여인은 이다지도 슬프게 우는 것일까? 혹 자식인가. 지아비인가, 혹 수(戍)자리 중에 죽었을까, 돌림병에 죽은 것일까?
우리는 ‘문화재를 감상할 때 온전한 것에서는 완결미를, 반쯤 남았거나 폐허에서는 잃어버린 반쪽이나 사라진 것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진다.’고 한다. 아마 이 여인은 자기의 마음을 열어 보이기 위해서,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급히 토우제작자에게 부탁했거나 긴병에 미리 준비했을 것이다.
-이제 여인은 세상의 덧없음을 사무치게 느꼈을 것이다. 기쁨이 덧없는 것처럼 슬픔도 덧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당신의 ‘딸’들 중에 적지 않은 딸들이 당신과 같은 길을 걸을 것임에 몹시 괴로웠을 것이다. 여인은 신라여인이고, 고려여인이고, 조선의 여인이었다.
나는 여인을 보고 또 보았다. 돌아서서도 몇 번을 더 보았다.
여인은 그날 ‘세계의 죽음’을 보았을 것이고, 나는 이날 ‘시간의 죽음’을 보았다.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2023,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