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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가난한 젊은이의 술회(述懷) (6)
항상 밝은 표정을 짓기 위해 애쓰고 마구 떠벌리며 의젓해지려 하는 나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이라는 손님은 막을 길이 없다. 이럴 때 마다 그걸 느끼면서 되뇌는 것은 역시 나는 혼자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관계가 양호하고 별 마찰이 없다하더라도 그것을 냉정하게 꿰뚫어보면 모두가 가식이고 외양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극도의 실망감에 세상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이윽고 뼛속깊이 고독감에 빠져든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길을 간다. 저마다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사고하고 행동하고 결정한다. 분명 신념과 주관의 경쟁이라면 좋은데 실제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고 준거가 다르고 지향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나는 내가 보더라도 무척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줄곧 나의 자존감을 높이고 그 무엇에도 문제의식을 갖게 했지만 가끔씩은 번민에 빠지게 하거나 자책하는 횟수를 많게 하였다.
자금까지 나는 내가 부덕한 탓인가 박복한 탓인 줄은 몰라도 눈물도 많이 흘렸고 사람을 그리워했고 스스롤 냉소하며 자기박대도 했다. 그렇지만 나를 잃어버리거나 용케도 마지막까지 돌아올 수 있는 다리는 끊지 않았다.
나는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고귀한 목적을 세우고 신념을 갖고 고초와 역경을 딛고 전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포기하고 단념하고 사양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리는 것은 세상의 법칙인 것이다.
나는 내 인격이 침해되거나 내 성의가 훼손된다면 탈리오법칙을 기억할 것이다. 정을 준 여자와 갈라져도 좋고 신임하는 친구와 헤어져도 상관없다. 이러한 자존심이나 자긍심이 오늘날까지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 나를 지탱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누가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해도 다 받아들일 것이다. 끝내는 나 혼자 쓸쓸히 남거나 짐이 무거워 쓰러져도 감수할 것이다. 모든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으며 누구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있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잘 안다.
1977년 8월 31일
남도땅 벌교에서.